남수단 국회, DPCW 결의안 공식 채택
행정부·사법부·입법부에 기반한 평화 제도화 추진
지난해 9월 15일, 남수단 과도기국가입법회의(TNLA)는 수도 주바 본회의장에서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DPCW)을 지지하는 ‘결의안 제29호(Resolution No. 29/2025)’를 공식 채택했습니다.
이번 결의안 채택은 10년 전 남수단 사법부 수장과의 교류로 시작되어, 2024년 살바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의 DPCW 공식 지지를 거쳐 입법부의 결단으로 완성된 결실입니다. 이로써 남수단은 행정부·사법부·입법부가 모두 DPCW를 평화 정착을 위한 공식 기준으로 수용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는 2011년 독립 이후 계속되어온 내전의 고리를 끊고, 국가 통합을 위한 법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DPCW 10조 38항의 가치를 담은 주요 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DPCW의 국제적 인정: DPCW를 전쟁 종식과 세계 평화 달성을 위한 국제 선언으로 인정하며, 유엔 총회 결의안 채택을 지지함.
- 자원의 평화적 재배분: 군사 자원과 공적 자금을 인권, 교육, 보건 등 평화적 목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함.
- 평화 문화의 확산: 평화·인권 교육을 공교육과 공공 정책에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청년 및 시민들이 참여하는 평화구축 프로그램(청년 평화구축 워킹그룹(YEPW), 청년주권평화교실(YEPC) 등)을 제도화함.
결의안 채택의 중심에는 전쟁의 아픔을 평화의 동력으로 바꾼 두 명의 남수단 리더가 있었습니다. 젬마 누누 쿰바 전 남수단 국회의장과 보나 뎅 로렌스 평화와 화해 상임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젬마 누누 쿰바 전 남수단 국회의장, 난민 생활을 통해 평화 의지 다져
남수단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인 젬마 누누 쿰바에게 평화는 ‘생존’과 직결된 가치입니다. 쿰바 전 의장은 1991년 내전이 발발했을 때 수십만 명의 난민 대열에 섞여 국경을 넘어 난민 생활을 했습니다. 그 시절 그녀가 간절히 바란 것은 단 하나, 자국으로 돌아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망명 생활은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닙니다. 자신의 국가를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그저 내 나라 사람들과 함께 내 땅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남수단으로 돌아온 이후 국회의장 자리에 오른 그녀가 HWPL과 DPCW에 주목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수많은 평화 협정이 맺어지고도 번번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해온 그녀에게 DPCW는 ‘실제로 작동하는 평화’의 해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DPCW가 국제 조약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각국이 자발적으로 법과 정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이정표임을 확신하며 DPCW의 입법 과정을 지지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실향민들이 발생했고, 이들을 국가에 정착시켜야 했습니다. 게다가 이웃 국가에서 일어난 전쟁 역시 남수단 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로 인해 평화협정의 원활한 이행이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정부 자원만으로는 평화협정을 이행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 DPCW는 우리에게 중요한 도구입니다. DPCW는 정부의 노력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 HWPL 9·18 평화 만국회의 제11주년 기념식 인터뷰 중에서

보나 뎅 로렌스 평화와 화해 상임위원회 위원장, 아버지로부터 평화 헌신을 이어받아
‘평화와 화해 상임위원회’를 이끄는 보나 뎅 로렌스 위원장에게 평화는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과제였습니다. 1972년, 그의 아버지는 아디스아바바 협정의 협상단으로 파견되었으나 동료들로그아웃이 모두 살해되는 비극 속에서 홀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남수단의 평화구축 활동에 헌신했으며, 이는 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지난해 ‘HWPL 9·18 평화 만국회의 제11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으며, 인터뷰에서 평화활동에 헌신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당신의 질문 일부는 제 나라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1956년 우리(수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는 한 번도 평화를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역사 내내 갈등과 전쟁의 연속이었고, 몇 차례 합의를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역사는 전쟁과 갈등, 고통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의 선함과 달콤함을 한 번도 맛보지 못했기에, 이제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싶고,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자 합니다. 전쟁은 이미 충분히 해봤지만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세대를 파괴했습니다. 이제는 평화를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가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을 때,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선언문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지는가?”, “우리 의회가 자발적으로 채택하는 것이 법적으로 적절한가?”라는 질의들이 제기되며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로렌스 위원장은 외교부와 법무부를 통해 DPCW의 조항을 면밀히 검토받았고 ‘결의안 상정에 이의가 없다’는 공식 서한을 확보하여 의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이에 의원들은 DPCW가 남수단의 평화 정착과 사회 통합에 활용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며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남수단에서 DPCW는 매우 중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습니다. DPCW의 10조 38항을 살펴보면 모든 핵심이 인권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조항들은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에 필요한 선한 가치에 온전히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행동을 통한 변화의 시작
결의안 채택은 법적 절차의 완료가 아니라, 남수단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로렌스 위원장은 결의안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닿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우리나라가 DPCW를 채택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평화구현 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행 과정에서 여러 도전과 어려움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DPCW가 채택되었을 때, 2018년에 체결된 협정의 이행이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던 일부 시민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국회가 의지를 가지고 DPCW를 국가 결의안으로 채택했을 때, 그것은 국민들에게 위안으로 다가왔고,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이는 곧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젬마 누누 쿰바 전 남수단 국회의장과 보나 뎅 로렌스 평화와 화해 상임위원회 위원장. 난민 생활의 기억과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사명,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진 두 리더는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임을 몸소 실천해 왔습니다. 결의안 채택은 그 선택의 결실이자, 남수단이 전쟁의 기억을 넘어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