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재 8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

섹션1. 이해
용서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용서를 결심해도 정작 마음에서 용서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정한 이해 없이는 상대를 완전히 용서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이해를 통해 용서할 수 있을까? ‘사건에 대한 이해’, ‘가해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는 용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섹션2. 용서
살다 보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반면 내가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듯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용서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오프라 윈프리의 영적 조언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 마리안 윌리엄슨은 “용서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가 입은 상처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표현했다. 용서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잊고 싶은 과거의 사건을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벌어진 사건과 가해자,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혹 용서를 ‘범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코 용서는 범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려면 오히려 상대방의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잘못을 규명하지 않으면 용서의 대상 자체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작가 스토미 오마샨은 “용서는 상대방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고 정리했다. 용서는 잘못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더라도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용서를 통해 바뀌는 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닌 복수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다.

섹션3. 용서와 평화
용서가 주는 개인적 차원의 유익이 내면의 치유와 회복이라면, 사회적 차원의 유익은 국가와 민족 간의 관계 회복과 평화 정착이다. 국가나 민족 간의 용서는 구성원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실행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지구촌의 분쟁과 전쟁종식을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독일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반인류적 범죄에 대해 지속해서 사과하고 나치의 과오를 반성해왔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 1994년에 로만 헤어초크 전 독일 대통령은 바르샤바 봉기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폴란드 국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했으며, 1995년에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고통과 죽음, 아픔과 눈물이 우리를 이곳에서 침묵하게 한다.” 독일의 반성은 정치인들의 사죄로만 그치지 않고, 나치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와 지속적인 재판 회부, 과거사 반복 교육 의무화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끊임없는 사죄와 반성은 주변국과의 관계 회복과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물론 독일의 이러한 노력이 과거의 역사적 만행을 바꾸는 것도 아니며, 피해 당사자가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해결 방안을 동반한 진심 어린 사죄는 개인이 하기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이 보여준 국가적 차원의 사죄와 용서는 평화와 공존의 훌륭한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섹션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분쟁, 폭력, 다툼과 그 속에서 생긴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는 현재를 치유하고, 미래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용서와 평화와의 관계를 이해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에서는 100% 가해, 100% 피해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100% 가해, 100% 피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또 피해를 입기도 한다. 만약 완벽하게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나에게 피해를 준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하고, 나도 남에게 준 모든 피해에 대해 전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는 용서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은 확실히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고 있다. 이해와 용서는 지구촌에 끊임없이 산재한 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그리고 평화의 새 시대를 견인할 힘이 있다. 나부터 주변 사람을 용서하고 평화를 실천해보자. 용서는 어렵지만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다. 용서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평화의 빛으로 점점 밝아질 것이며, 용서의 실천은 나와 세상을 치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