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 ‘평화의 정신’으로 되찾은 나라, 대한민국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이를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이다.” – 3.1독립선언서 중 일부

▲1919년 3월 1일, 약 20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펼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2시 30분, 한국(당시 대한제국) 서울 탑골공원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로부터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의 강제병합을 비판하고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외침이었다. 만세 함성이 시가지를 행렬하자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에 동의하며 함께 만세를 외쳤다. 순식간에 서울이 만세 함성으로 떠들썩 해졌으며, 이는 두 달에 걸쳐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만세운동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국가를 강제로 점령하고 무력통치를 행하던 일제에 대응하는 비폭력 평화운동의 시작이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 한국은 일제에 의해 강제 점령되어 군인들의 공포통치 아래 고통받고 있었다. 당시 연합국을 이끌고 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패전국의 식민지 전후 처리에 대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주장했다. 이는 자기 나라의 일은 자기 나라 국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곧 식민통치에서의 독립을 의미했다. 일본은 패전국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독립대상이 아니었으나 한국의 독립을 열망하던 사람들은 이때를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에 민족의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해외에서도 한국의 독립지지를 얻기 위해 여러 방법이 시도되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학생들과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천도교의 손병희를 중심으로 교단 교파를 초월하여 마음을 모은 종교지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1운동을 계획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단체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며 선언문이 행사 전에 배포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하였다. 그리고 행사 당일, 학생들의 주도하에 선언문이 낭독되고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무력충돌이 없는 평화적 시위였으며,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어 독립선언문이 있다면 어디서든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이러한 독립운동에 놀라 시위를 탄압하기 시작했으나 독립과 평화에 대한 열망은 한반도 전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뻗어나갔다. 중국에서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5.4운동을 펼쳤으며 인도에서도 비폭력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민족의 독립의지를 확인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 단체를 모으고 임시정부를 설립하여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독립기념관 소장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9호) (사진 문화재청홈페이지)

억압과 탄압 속에서 3.1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들이 행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애국’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편협한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애국심은 인류애와 동일하다.”고 말했다. 내 가족과 내 이웃을 사랑하기에 내 나라를 사랑하고 나아가 이 지구촌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평화를 위해 행동하고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21년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 신년축하식 기념촬영 모습. (사진 독립기념관)

올해는 한국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촌 곳곳은 전쟁과 분열로 고통받고 있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화합했으며 주권 회복을 위해 평화를 외쳤던 3.1운동의 정신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세계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반인륜적 사회 문제에 대응하고, 자발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다면 분명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HWPL이 평화운동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계시민의 가슴에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일깨워서 특정 인물도 단체도 국가도 아닌, 세계시민들의 힘으로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빼앗긴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그날의 외침’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옛말에 나라 사랑하기를 내 집같이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이 집을 사랑하지 않으면 집은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 유관순 열사

“사랑의 문화와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더불어 인류 전체가 의좋고 즐겁게 살도록 하자”
-백범 김구

“청년시대에는 부모 형제, 처자의 사랑보다 한층 더 강하고
굳센 사랑이 있음을 각오했다.
독립운동의 길로 가겠다는 결심이었다“
– 윤봉길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