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종교연합사무실 경서비교토론회 ‘기도에 대하여’

HWPL의 평화행보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종교연합사무실은 현재 129개국 266개소로, 각각의 사무실에서 매달 또는 격주로 경서비교토론회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 달의 HWPL 소식을 알리고, 당일의 토론회 주제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선택되었는지 등을 발표한 후에, 좌장이 이어받아 토론을 시작하게 됩니다. 각 종교에서 참석한 3명 이상의 패널들은 그날의 질문에 대해서 준비해 온 발제를 하고 발제를 듣는 동안 생긴 질문에 대해 종교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질문합니다. 청중에게서 질문을 받아 지도자들이 대답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당 주제에 대해서 각 경서의 답을 깊이 알아본 후에는, 서로의 종교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다며 참석자들이 서로에게 더 가까워진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종교연합사무실은 경서비교의 장이며 종교의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918행사에서 인사들은 종교연합사무실(이하 종연사)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로쉬 질베르토 블랑코 / 메시아닉 유대교
제가 언제부터 이 종연사에 참석해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영원히 참석할 것 같습니다. 주로 3~4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는데요.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자세히 들어보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고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계속해서 이 일을 해 나가서 평화를 전 세계적으로 퍼뜨리기 바랍니다.

모하메드 부카이 / 이슬람
항상 종연사에 참석하는 것이 기쁩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모두 바라는 평화를 주제로 토론했는데요, 이 주제는 반드시 널리 퍼져야 하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많이 공유할 수록 더 큰 영향력을 얻게 됩니다. 좋은 소식을 전파해서 더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꿈은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가능합니다.

이제 지난 9월 26일 폴란드 바르샤바 종교연합사무실에서 ‘기도’라는 주제로 진행된 경서비교토론회를 소개하는 것으로 종교연합사무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합니다.

2020 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HWPL은 종교와 교파와 국경을 넘어 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온라인으로 함께 모여 팬데믹과 여러 문제들로 고통받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종교에 따라 기도의 형태와 언어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었고, 각 종교 별 대표자가 인도하는 기도에 따라 참석한 모두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놀라운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일까요? 각 종교에서 기도라고 말하는 행위의 핵심은 무엇이며, 기도의 의식은 왜 그러한 형태를 띄게 되었을까요? 또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유대교, 불교, 기독교 패널이 해당 질문에 대해 답변을 주셨습니다.

1) 당신의 종교에서 기도란 무엇입니까?

랍비 데이비드 바속 / 유대교
유대교에서 그 대답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 시대와 약 2000년의 “새” 시대입니다. 성경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그 나라의 많은 왕들이 선지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기도가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비, 건강, 보호 및 평화와 같은 필요한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났고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2000년 전 유대 의식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기도는 유대교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3~4번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시편이나 성경의 다른 부분을 함께 읽습니다. 밖에서 기도하는 것이 더 좋으며, 회당이나 사무실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될 때는 기도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집중이 잘 안 되는 곳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 합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인도자가 있습니다. 회당의 기도 인도자는 대부분 남자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꼭 랍비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유주의 유대교에서는 여성도 인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유대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이지만 2000년 동안 랍비들은 일정에 따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의례가 되면 자연스럽지 않고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랍비들은 기도를 짧게 하되 좋은 의도로 하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후류 선생 / 선불교
선불교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만트라, 경전, 다라니와 같은 경전의 구절로 기도합니다. 이 구절들은 지혜와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보살에게 이 지혜를 구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묵도도 있고 독경도 있습니다. 또한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도 있고, 절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또한 좌선이라 불리는 명상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열린 성숙한 마음으로 일하고 쉬고 잠자는 것도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영적 수행을 기도로 취급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자유와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됨을 경험할 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선불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화는 기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열릴 때 평화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밀로쉬 밀발트 / 기독교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 종종 기도합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해결책이나 응답을 찾아야 할 때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난 존재에게 기도하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자에게 기도는 신앙생활의 기본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와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신앙인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듯 자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친구를 사귈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친구를 사귀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2장 23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기도에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멈추면 죄를 짓기 쉽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워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20절 또한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6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31-32절에 보면 이방인(불신자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신앙인은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고 33-34절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마태복음 26장 39절에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과 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릇된 동기로 기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2) 당신의 종교에서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랍비 데이비드 바속 / 유대교
유대교에서는 중세에 기도의 의미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큰 철학적 질문을 가져왔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선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아프면 과거에 한 내 행동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치유 받기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다면 기도를 통해 다른 현실을 이루어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부 유대인들은 여전히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주류 유대교는 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새로운 이해를 이끌어 냈습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이자 훈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 기도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후류 선생 / 선불교
기도의 목적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달음과 조화로운 삶, 남을 돕는 것과, 평화와 지혜, 참된 자유와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성숙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온 세계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만트라의 구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열도록 노력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구하고 기도를 통해 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혜가 우리 안에 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보살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지혜를 받았을 때 먼저 그것을 적용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밀로쉬 밀발트 / 기독교
앞서 답변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기도의 목적은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것을 설명하는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잠언 15장 29절에서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의인은 거룩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의로운 자의 기도의 한 예는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진 유명한 왕입니다. 그는 기도할 때 장수나 재물이나 그 무엇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열왕기상 3:11-12). 이 기도가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지혜뿐 아니라 모든 부와 존귀를 받았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은 또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거룩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모든 사람이 그와 하나가 되어 행복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우리의 소망도 이루어집니다. 내 소원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각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도는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한 교육이자 훈련이라고 하였고, 2000년 전에는 하나님께 사람들이 직접적인 응답을 받는 것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선불교에서는 기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으며, 명상과 성숙한 마음으로 일하고 숨쉬고 자는 모든 행동이 다 기도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도움과 응답을 구하는 것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사람의 소원 만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번 경서비교토론회는 종교에서 구도하는 행위로서의 기도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