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소토 특집] 갈등이 사라진 학교, 아이들이 평화를 선택하다

HWPL 평화교육이 만들어가는 레소토 학교들의 변화

 

 

레소토 남부 작은 농촌 마을. 한때 수업 거부와 기물 파손이 반복되던 학교에서 자란 16살 학생은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싸움이 많이 줄었어요. 이제는 우리끼리 해결하거나, 평화 장관한테 얘기해요.” — 렐레보힐레 마세루,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10학년

평화 장관은 정부 직책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직접 맡은 자치 역할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교사 대신 이 학생 대표를 찾아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 변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교실을 비우던 아이들

레소토는 아프리카 남부의 작은 왕국입니다. 인구의 54.7%가 빈곤선 아래에 살고, 청년 실업률은 34%에 달합니다.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청소년 40%는 교육도 직업훈련도 받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사회 안전망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교육은 있지만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좌절이 학교 안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옵니다. 레소토 학교 현장을 연구한 학자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만연하며, 그 뿌리에는 빈곤, 가정 해체, 부모의 부재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쌓일 때, 학생들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수업 거부였습니다.

릴레보힐레 학생은 그 문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군가 파업을 한다는 건, 자기 말이 안 들린다고 느껴서 모든 걸 멈춰버리는 거예요. 학생들도 불만이 있으면 수업에 안 나와요. 들어달라는 거죠.”

— 렐레보힐레 마세루,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10학년

2019년 레소토 리바넹고등학교에 풀렝 은칼레체 교장이 부임했을 때, 학교는 수업 거부와 기물 파손이 반복되고 등록 학생이 100명 아래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불신은 깊었고, 교장 교체 과정에서의 내부 갈등까지 겹쳐 학교 전체가 무너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풀렝 교장은 교육부와 학교 운영자들에게 차례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  풀렝 은칼레체,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교장

도움을 찾던 그는 평화교육발전기구(Development for Peace Education, DEP)를 통해 HWPL을 만났습니다. DPE는 레소토의 시민사회단체로, HWPL과 협력하여 레소토 전역 학교에 평화교육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레소토 8개 지역 24개 이상의 학교에서 교사 연수와 워크숍을 운영하며, 평화교육이 별도 수업이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지원합니다.

 

평화 장관이 된 학생들

HWPL 평화교육은 평화적 태도와 가치관을 학교 안에서 먼저 익히고, 그것을 일상과 사회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입니다. 이를 통해 다양성과 협력, 공존과 화합, 이타심과 희생, 사랑과 자연, 어른 공경 등 삶과 맞닿은 평화의 가치들을 배웁니다. 나아가 그 가치들을 교실 안에서 바로 연습합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존중과 배려를, 선생님께는 존경과 예의를 실천합니다. 이러한 실천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생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교육, 그것이 이 아이들을 바꾼 방식이었습니다.

 

 

풀렝 교장이 평화교육을 학교에 들여온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학교 운영 구조였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 장관, 교육 장관, 식량안보 장관, 재정 장관. 학생 대표단이 실제 역할을 맡아 학교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했습니다. 불만이 있을 때 수업을 거부하는 대신, 자신들의 대표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익힌 것입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학생으로만 있지 않았습니다. 평화 장관이었고, 교육 장관이었고, (식량안보 장관)이었고, 재정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 풀렝 은칼레체,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교장

2020년, 체육 활동 예산이 부족해 스포츠 대회 참가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전이라면 불만이 수업 거부로 번졌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 대표단은 스스로 모금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습니다.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서, 학생들이 직접 답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대회에 나갔습니다.

 

리바넹 고등학교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낯선 방식이 일상 업무에 더해지는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천천히, 분명하게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그 교사들이 먼저 평화교육을 수업에 녹여냅니다. 마세일라차치 세로비냐네 교사는 말합니다.

모든 선생님이 평화의 메시지를 어디서든 전하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식을 직접 실천하길 바랍니다.”

— 마세일라차치 세로비냐네,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교사

변화는 학교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렐레보힐레 학생은 한 친구가 집에서 남동생들 사이의 돈 문제를 중재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친구는 부모님께 이르는 대신, 차분하게 앉아 동생들과 이야기했습니다. 렐레보힐레가 말한 그 변화는, 바로 이 교실에서 시작됐습니다.

학교에서 먼저 연습한 것들이 가정으로, 마을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레소토 곳곳, 저마다의 평화

리바넹 고등학교만이 아니었습니다. 레소토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 성적까지 바꾼 평화

2021년 노안젤리나 데베셰 레소토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교장은 DPE를 통해 처음 평화교육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장 본인과 교사 단 한 명, 두 사람이 함께 연수를 받았습니다.

 

 

시작은 저와 선생님 한 분, 딱 두 명이었습니다. 그래도 시작했습니다. 평화의 씨앗은 그렇게 심어졌습니다.”

— 노안젤리나 데베셰, 레소토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교장

학교로 돌아와 동료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나누자, 교사 전원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처음엔 망설이는 교사도 있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학교는 하나의 팀이 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평화교육의 날이 되었고, 아이들은 그 주에 실천할 가치를 직접 정했습니다.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음폰챙 레첼라 교사에 따르면, 수업 주제는 교과서 속 지식이 아니라 다양성과 협력, 공존과 화합, 이타심과 희생처럼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것들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 학생들이 직접 발표하고 배운 가치를 한 주 내내 실천했습니다. 변화는 갈등이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갈등이 생기면 선생님을 찾는 대신 스스로 앉아 서로 이야기했고,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갈등이 줄고 교실이 안정되면서, 아이들은 비로소 배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숫자로도 나타났습니다. 레소토 시험위원회는 최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 비율로 상위 학교를 선정합니다. 2024년,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는 전국 8위를 기록하며 레소토 Top10 학교에 선정됐습니다. 노안젤리나 교장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은 평화교육 덕분입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평화의 가치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교실이 달라졌고, 그 변화가 성적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 노안젤리나 데베셰, 레소토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교장

 

 레코파 커뮤니티 초등학교 — 먼저 미안하다고 한 아이

말레타코 마리암 카벨레 레코파 커뮤니티 초등학교 교장은 9년째 이 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교육 자원이 부족한 환경이지만, 학생들이 가치관과 올바른 태도를 갖추어 평화롭게 타인과 함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교장은 주 2회 직접 수업을 맡아 아이들에게 서로를 존중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레코파 커뮤니티 초등학교 교장, 교감

 

마코파노 차카 교감에 따르면, 아이들은 갈등이 생겼을 때 싸우는 대신 이야기로 풀 줄 알게 됐습니다.아이들은 먼저 감사를 표현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차카 교감은 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수업에서 배운 감사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직접 감사 카드를 만들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담았습니다. 교실 안에서도 변화는 이어졌습니다.

 

 

마니니가 카틀레호를 밀쳤는데, 바로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 보흘로코아 리세네, 레소토 레코파 커뮤니티 초등학교 4학년

9살 아이의 한 마디가, 교실에서 일어난 변화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줍니다.

 

100명의 교사, 한 자리에

지난 3월 마세루에서 열린 한 행사는 이 변화들이 단지 몇몇 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행사는 HWPL과 DPE가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교사 수료식이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레소토 각지에서 평화교사 양성교육을 이수한 약 100명의 교사들이었습니다. 레소토 교육과정평가 책임자가 직접 참석해 이 자리의 공식적인 의미를 더했습니다.

갈등과 폭력은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가치관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 곁에서 직접 이끄는 교사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 레소토 교육과정평가 책임자

교육과정 평가 책임자는 평화교육이 레소토 공교육 전반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뜻도 함께 밝혔습니다. 수료식의 마지막 순서는 100명의 교사가 함께 서약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약의 이름은 ‘피스 마이 레소토(Peace My Lesotho)’. 레소토의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교사들은 네 가지를 함께 다짐했습니다.

①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라는 믿음으로 평화교육을 이어갈 것.

② 전문적인 평화교육 내용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교사가 될 것.

③ 자신이 속한 학교를 존중과 배려가 있는 평화 학교로 만들 것.

④ 자신의 작은 실천이 레소토 전체를 평화로운 땅으로 만드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으며, 지역 안에서 평화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것.

 

레소토 평화교사 수료식

 

평화교육을 통해 학교와 학생들에게 회복과 희망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선생님들이 평화의 메시지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풀렝 은칼레체, 레소토 리바넹 고등학교 교장

수료식이 끝난 후 100명의 교사는 다시 각자의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레소토에서 평화교사 양성교육을 이수한 교사가 이제 100명이라는 것, 그리고 교육부가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것 — 레소토 평화교육이 학교 담장을 넘어 국가적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평화가 문화가 되는 교실

노안젤리나 교장은 Top10 성과를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며, 이 성과가 오히려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 변화가 한 학교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직접 교육부 장관을 찾아가 평화교육이 학교 현장에 가져온 변화를 발표했습니다. 레소토의 모든 학교에서 평화교육이 공교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안젤리나 교장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평화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교육은 가능합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가능했으니까요. 한번 해보세요. 평화는 나 한 사람에서 시작해서 가정으로, 학교로, 마을로, 나라로 퍼져나갑니다.”

— 노안젤리나 데베셰, 레소토 모리피 커뮤니티 고등학교 교장

리바넹 고등학교의 렐레보힐레는 오늘도 친구들 사이의 갈등 앞에서 대화를 선택합니다. 모리피의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이번 주 실천할 평화 가치를 스스로 정합니다. 레코파의 9살 보흘로코아는 친구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를 배웠습니다. 세 학교가 있는 곳도, 걸어온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 이 아이들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자라고 있습니다.

레소토의 모든 아이들이 평화를 배우며 자랄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레소토의 교실에서는 평화가 문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참고 출처

  1. BTI 2026 Lesotho Country Report — https://bti-project.org/en/reports/country-report/LSO
  2. World Bank Blog, “Basotho youth have what it takes to transform the economy”, 2024 — https://blogs.worldbank.org/en/africacan/basotho-youth-have-what-it-takes-transform-economy-they-just-need-right-support
  3. De Wet, N.C., “School violence in Lesotho”, Africa Education Review, Vol. 6, No. 1, 2007 — https://files.eric.ed.gov/fulltext/EJ1150041.pdf
  4. DPE–HWPL Peace Education Teacher Graduation Ceremony, Maseru, March 2026 — https://www.sorotnews.co.id/hwpl-gelar-wisuda-guru-pendidikan-perdamaian-di-lesotho-dorong-pencegahan-konflik-melalui-pendidik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