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HWPL 지구촌 평화 지도자 콘퍼런스 축사 –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루마니아 제3대 대통령, 루마니아

 

 

존경하는 이만희 대표님, 친애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다시 한번 HWPL 평화 만국회의 기념식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이 기회를 통해 한국 파트너들과 협력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특히 이러한 협력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9년 전, 2014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평화회의에서 만난 HWPL 대표님은 당시 베를린 문화외교아카데미 회장직을 맡고 있던 저에게 전쟁종식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법 제정과 종교대통합 협약 서명에 참여할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는 일에 협력해달라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이 계획을 문화외교의 잠재력을 실질적으로 보여줄 환영할 만한 사례로 보았습니다. 제 경험을 통해 종교지도자들 간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8년, 저는 ‘평화는 하나님의 이름이다’라는 제목으로 부쿠레슈티에서 대규모 기독교 콘퍼런스를 주최했는데, 여기에 다수의 주요 기독교 지도자(가톨릭 추기경, 정교회 총대주교, 개신교 및 신개신교 수장)와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및 기타 동양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때 회의를 통해 저는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의 신자들도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서울에 도착해서 세계평화걷기에 참여한 수많은 청년들을 보며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9월 16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 행사에 참석한 10만여 명의 청년들 중 여러 명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김일성 위원장을 모방하여 부쿠레슈티에서 열었던 대회와 이 행사가 얼마나 다른지 보았습니다. 2014년 서울에 모인 (평화)행사 참가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왔으며, 이들은 협박이나 위협을 받고 참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이끈 것은 정치적 광신주의도 아니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번영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진지한 열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면 젊은 남성들은 전쟁터에 싸우도록 보내져 죽기도 하며, 어머니, 자매들 또는 딸들과 같은 여성들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한 채 남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시는 바와 같이, HWPL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성장하며 그들의 활동의 타당성을 입증한 청년단체, 여성단체와 두개의 날개처럼 긴밀히 협력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저개발은 내전과 지역전쟁을 조장합니다. 제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때는 1994년으로 ‘경제와 사회 발전’을 주제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민주주의 지도자 포럼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직접 부쿠레슈티를 방문해 저를 행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이 콘퍼런스에서 저는 연설을 통해 사람들이 단지 오늘, 내일 살아남기에만 급급하다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삶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학대와 박탈을 당하는 한 평화는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붉은 군대의 점령하에 14년을 살아온 사람들로 이주, 폭격, 기근, 정치적 박해, 추방, 독재 정권의 범죄, 그리고 세계 다른 나라로부터의 고립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동시대의 한국인들을 매우 잘 이해합니다. 우리 루마니아인과 과거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동유럽 국가들은 한국이 귀한 광물 자원이나 농경지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발전된 기술을 가진 부유한 국가가 되어 평화롭게 사는 것에 감탄합니다.

루마니아인들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는데요, 2018년 독립한 루마니아 출신 사람들과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러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함께 민족 대연합 100주년을 기념했을 때, 레반트 문화문명고등연구소는 HWPL과 함께 그 해 5월에 부쿠레슈티에서 ‘평화를 위한 공감의 연대’ 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각 나라의 전 민주주의 대통령과 러시아 연방 부총리가 참석해 국내 및 국가 간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한 그들의 폭넓은 경험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도 루마니아인들은 한국인들처럼 두 개의 인접 국가로 나뉘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많은 한국 청년 대표단에게 흥미로운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루마니아와 몰도바는 둘 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8년 9월, 저는 평화 만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당시 연설에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쉴 새 없는 ‘전쟁의 역사’였다면 이제는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평화) 만국회의에서 우리는 평화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폭력적 갈등이나 심리적 압박의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평온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인류 최고의 가치라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2014년에 채택한 표어인 ‘위아원’이 말해주듯,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적대하는’의 태도를 ‘사람과 사람이 나란히 함께 가는’ 태도로 대체하는 새로운 기준 체계를 만들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세계평화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2022년 2월에 촉발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연방의 이유 없는 공격으로 수십만 명의 청년들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물질적, 비물질적 자산이 모두 광범위하게 파괴되었으며, 전 세계 식량과  에너지 위기는 물론 수백만 명의 난민이 원치 않았지만 대규모로 이주해야 하는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국제인권위원회가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모든 인권은 침해당했으며, 이는 법치주의를 전제로하여 기존 세계 질서가 쌓아온 모든 것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악화됐습니다.

침략이 군사, 정치, 법, 경제, 사회, 이데올로기에 미친 결과는 각각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하여 종합적으로 보면 인류의 존재가 갑자기 새로운 국면을 맞게되는 즉 인류가 붕괴되는 상황으로 이끌 수도 있는 단계의 문턱에 섰음을 나타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한때 이뤄낸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훼손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까요? 우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저는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 각지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고,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고위 정치인들이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석하러 (이 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직까지 생각을 변화시키고 마음과 정신을 모두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수천년 동안 인류의 역사가 평화의 역사가 아닌 전쟁의 역사로 계속되어 왔는지, 그리고 인류의 의식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들은 왜 평화의 군주가 아닌 전쟁의 군주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사회적으로 폭력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영화, 텔레비전, 대중매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폭력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증오를 조장하는 환경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평화의 문화는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분쟁의 해결뿐 아니라 폭력을 거부하는 교육 과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자유, 진실, 정의와 같이 모두가 받아들이는 가치, 즉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자유, 진실, 정의의 이상을 중심으로 모인 수많은 대중의 연대가 평화적 수단을 통해 실질적으로 실현되도록 이끌었던 동유럽의 최근 역사의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의 문화는 단기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둠에서 빛으로’의 긴 여정입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서 노년까지의 기간에 걸쳐 사회 전체에 적용되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개개인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는 길고 복잡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습니다.

70여 년 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창립 선언 전문(前文)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우리는 이것이 “이웃 간에 평화가 있기 위해서는 가정에 평화가 있어야 하며, 가정에 평화가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속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노자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제2차 냉전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치명적인 지역 전쟁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 대격변의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군사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이 고조되어 이제 세계평화는 기적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초자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는 유럽인의 관점과는 달리, 한국의 오랜 지혜가 담긴 옛 속담은 ‘기적은 인내와 동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년 전 서울에서 우리를 하나로 모았던 희망에서 ‘세계평화의 기적’이 탄생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의 행동에 그러한 인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